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Drive My Car)’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상실의 고통과 인간 간의 소통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긴 여운을 남기며 2021년 칸 영화제 각본상과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본 리뷰에서는 상실과 치유의 여정, 소통의 한계와 가능성, 차 안이라는 공간의 상징성이라는 세 가지 소주제로 영화의 깊이를 해석하고자 합니다.
상실과 치유의 여정
‘드라이브 마이 카’의 중심에는 주인공 가후쿠의 깊은 상실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내 오토를 갑작스럽게 잃은 뒤, 그녀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맞서야 합니다.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그녀의 외도와 죽음을 동시에 떠안은 상태에서, 그는 모든 감정을 억누른 채 침묵 속에 살아갑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억눌린 감정의 해체와 회복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따라갑니다.
가후쿠는 히로시마에서 연극 ‘바냐 삼촌’을 연출하게 되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특히 운전기사 미사키와의 동행을 통해 점점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게 됩니다. 미사키 역시 어머니를 잃은 과거가 있어, 이 둘은 서로의 고통을 인정하며 조금씩 치유받습니다. 영화는 어떤 급작스러운 해결이나 드라마틱한 전환 없이, 현실적인 감정 흐름을 따라가며 관객에게도 감정의 여백을 줍니다.
치유는 이 영화에서 ‘극복’이 아닌, ‘공존’의 의미로 나타납니다. 상실은 사라지지 않지만, 함께 나누고 인정함으로써 인간은 그것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는 일반적인 감동 서사와 차별화되는 점으로, 진정한 삶의 깊이를 전해주는 핵심입니다.
소통의 한계와 가능성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언어는 중요한 주제이자 장치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심지어 대사를 읽기만 하면서도 서로의 감정을 교감합니다. 주인공 가후쿠는 대사를 반복 재생해 듣는 습관이 있으며, 오토는 이야기(스토리)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삶에서는 많은 말들이 오히려 진심을 가리는 장막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영화가 소통의 한계를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음을 뜻합니다. 가장 가까웠던 아내와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녀가 죽은 뒤에야 그 진심을 더듬어가는 모습은 매우 현실적이고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는, 언어와 표현이 불완전하더라도 진심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연극 오디션 장면이나 실제 공연 장면에서, 각국 배우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대사를 주고받는 모습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언어의 다름은 장벽이 아니라 이해의 또 다른 방식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다문화 소통’, ‘비언어적 이해’와도 연결되며,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철학적 성찰을 유도합니다.
차 안이라는 공간의 상징성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차량, 특히 붉은색 사브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감정의 무대이자 고백의 공간으로 등장합니다. 주인공 가후쿠는 이 차 안에서만큼은 자신을 숨기지 않고 조금씩 솔직해지며, 미사키와의 교감도 주로 이 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움직이는 차 안이라는 닫힌 공간은 외부와 차단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감정을 열어가는 내부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 내내 차 안에서는 대화가 이루어지되, 절대 과도한 감정 폭발이나 갈등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잔잔하게 흘러가는 대화와 침묵이, 두 사람의 심리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고,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들과 함께 그 공간을 ‘탑승’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관객이 감정의 여정을 직접 따라가는 듯한 체험을 선사합니다.
또한 차 안은 과거와 현재, 상실과 희망, 침묵과 표현이 교차하는 교차점이 됩니다. 이 차에서 흘러나오는 오토의 목소리는 과거를 계속 상기시키고, 미사키와 나누는 대화는 현재를 살아가게 합니다. 결국 영화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내면의 세계를 비주얼화하고, 감정의 흐름을 설계하는 데 성공합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삶의 상처와 관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영화입니다. 상실과 치유, 소통과 침묵, 공간과 감정이라는 주제를 차분하게 풀어내며, 관객에게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이 영화는 빠른 전개와 강렬한 자극에 익숙한 관객에게도 한 번쯤 “느린 감정의 여행”이 얼마나 깊고 의미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마음이 조용한 날 천천히 감상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